담장너머의 이웃사촌
2012.08.27. 12:37
열대야 정말 힘들게 하는군. 미숫가루에 얼음 둥둥 띄워서 먹고 있는데 띵동 ! 문자 메세지가 왔다. 팀장님 집 앞 쪽 담장 가로등 밑으로 나오세요.
J 가 이 밤중에 웬 일인가 하고 나갔다. 여기요 ! 담장너머 가로등 밑에서 손을 저으며 부른다. 와 ! 오랫만이네, 잘 계셨죠.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휴가로 강원도 친정을 다녀왔는데 농사지은 양배추하고 감자를 얻어 왔고 조금 드리고 싶어서 양배추 2통하고 감자 조금인데 맛있게 드세요. 하고 담장너머로 검정 비닐봉지를 넘겨준다. 제법 무겁다. 양배추 2통의 무게가 장난이 아니다
웃음이 터졌다. 여름 밤 담장 안과 밖에서 여인들의 웃음소리가 열대야를 날려 버린 것 같이 시원하고 재미있었다. 도심 한복판 아파트 담장너머 이런 풍경 자체가 돌발적이고 생뚱맞고 순간 아득한 옛날 시골 집 담장의 향수를 불러 일으켰다.
그랬다 j가 우리 아파트 바로 앞 빌라 2층으로 이사를 왔다고 하였다. 아파트 3층인 우리 집에서 담장 밖 빌라 2층이 보인다. 이웃사촌이 되었네 하고 서로 반가워했는데 세상에 어린친구에게 얻어먹어서 어쩌지 ? 그래도 그녀는 좋다고 하였다.
팀장님 ! 이젠 문자 보내면 이곳에서 만나기로 해요. 우린 여기를 비밀 접선 장소로 약속 하였다. 후후 재미있다.
J 는 맞벌이 부부이고 자녀 둘이 고등학생이라고 했다. 그녀는 직장을 다니면서 전문봉사자로 나누는 삶을 실천하는 젊은 친구이다. 훤칠한 키에 단정한 자세와 말이 적고 조용한 봉사자 이구나 그런 첫 느낌이 7년 차의 세월에도 처음 그 모습으로 변함이 없이 활동하던 친구라고 기억 한다.
나중에 남편을 보았을 때 깜짝 놀랐다. 키가 한 뼘은 작았지만 성실함과 당당함으로 활동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내가 작은 거인이란 이름을 지어주었다. 예쁘고 날씬한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작은 남편과 결혼 했느냐고 물었을 때 연애 할 때는 키가 작아 보이지 않았고 참 매력 있는 남자라고 칭찬을 하였다. 그렇지만 아이들의 키는 성공 했다고 하면서 우린 그렇게 웃으며 사소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었다. 그들 부부에게서는 자립심 과 자긍심이 많이 느껴지며 성실한 삶의 자세가 믿음직하고 이쁘고 만나면 반가운 사이가 되었다. 그런 젊은 친구가 이웃사촌이 된 것이다.
어제 또 문자가 왔다. 약속 장소로 나오세요, 여름 밤 비밀 장소로 가는 마음은 즐거웠다. 담장을 경계로 이야기 나누는 짧은 순간이 스릴도 있고 재미있고 그녀의 맑은 미소가 가로등 불빛에 더욱 밝아서 좋았다. 친정에서 옥수수 보냈는데 몇 개 안되지만 ... 또 검정 봉투가 담장너머로 나에게 온다. 우리 참 재미있다. ㅋㅋㅋㅋ 그녀에게 난 집에서 시원하게 입을 남녀혼용 파자마를 담장 위로 넘겨주었다.
담장은 벽이다, 벽은 미움과 탐욕으로 단단하다. 경계와 어리석음으로 더욱 미움이 두터워지게 마련이다. 또한 경계의 표시이며 무관심과 단절의 상징으로 쉽게 넘나들지 못하는 것으로 인식 된 지금의 현실에 이런 벽을 허무는 이웃이 되어 담장너머로 마음을 주고받고 있으니 또 다른 행복감을 느낀다. 그 젊은 친구의 발랄한 생각이 나를 카타르시스에 빠지게 하는 여름 밤이다.
지난 7월 어느 날 여름 밤의 풍경을 담아 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