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아직도 꿈꾸는 여자?
아직도 꿈꾸는 여자
석수 도서관
예비 작가를 위한 글쓰기 교실 기초반 강의 현수막 앞에 내 발길이 멈췄다. 다시 한 번 천천히 읽어보았다.
순간 예비 작가란 글자가 목에 가시처럼 걸린다. 집으로 가면서도 미련처럼 뒤돌아 보았지만 오르지도 못할 나무 쳐다보지도 말자며 단념을 하였다.
잠자리에 들면서 작가란 글만 없었어도 신청을 하였을 텐데 하면서 뒤적거리다 잠이 들었다.
며칠 후 책을 반납하러 갔을 때 직원에게 문의 해보았다. 벌써 마감이 되었다고 한다. 안양에 글 쓰려는 사람들이 많은가 봐요. 작가님이 예비자 10명 정도 신청을 받으라고 해서 접수 중이라고 말에 선뜻 신청을 하였다. 무모한 용기지만 도전 하기로 했다.
첫 수업이 시작되었다.
'행복한 수필 쓰기' 유인물과 원고지 1매를 받고 맨 끝 좌석에 않았다.
약 30 여명 정도 대부분 젊은 여성들이었고 남성들도 대여섯 명 정도이며 내 나이 또래는 찾기 쉽지가 않았다. 퇴직한 남성들은 인생 회고록을 쓰고자하는 목적으로 참여 했다는 분도 계셨다.
책도 많이 읽고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젊은 여성들이 참여한 수강생들이었다. 당연히 내 연령층은 없었다.
강사 선생님은 홍미숙 작가 안양에서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꽤 유명한 작가이며 여러 권의 책도 집필한 꽤 유명한 여성작가인가 본데 난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그것은 내 일상이 글 쓰는 일에 크게 관심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작품 활동도 활발하여 출판한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가문의 영광과 문화적 영광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은 저명한 작가에게 수업을 받는 것부터 행운 같았지만 독서를 많이 하지 못하고 글쓰기를 해 본 적이 없는 내가 무리수를 두는 것이 아닐까 두렵기도 하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작가의 수필 작품 ‘신호등’이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어 1년에 백 만 원 정도 원고료도 나온다고 한다.
이렇게 유명한 작가에게 수필 공부를 하게 되었으니 그것도 무료로 강의를 들으니 역시 인문학 도시 안양시에 감사하고 안양시민으로서 행복하다.
내가 강의를 신청한 첫째 이유는 다른 수강생들처럼 작가가 되려고 신청한 것은 절대 아니다. 이런 목표는 언감생심 나로써 꿈도 꿔 본 적이 없다.
나에게 원고지는 생소한 용지 그 자체이다. 생면부지의 사람을 만난 듯
서먹서먹하여 글을 쓰라고 하는데 도저히 쓸 수 가 없다. 글 쓰는 작업을 원고지로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난 그 동안 가끔씩 내 일상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을 아주 짤막하게 간혹 써 놓았던 글들이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다.
짧은 글이라도 쓰게 된 계기는 직장에서 나의 업무로 시작되었다.
2003년 3월 안양시자원봉사센터에 봉사하러 온 대학생을 붙잡고 온라인 공간 ‘카페’라는 것이 있다는데 봉사자들의 소통 공간 ‘카페’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봉사자들이 자원봉사센터를 방문하지 않아도 봉사프로그램 정보를 온 라인 상 공유하며 참여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하였다. 그 시절은 인터넷을 많이 이용하던 때가 아니었다.
대학생 봉사자는 모든 봉사자와 특히 청소년봉사자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나의 제안을 잘 받아들였다,
이렇게 대학생의 지도를 받으며 탄생한 것이 현재 안양시자원봉사센터 홈페이지 한 켠에 자리 잡은 봉사자들의 온라인 커뮤니티 공간인 ‘아름다운 동행 ' 카페이다.
그 때는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며 미지의 세계에 첫 발을 들여놓듯이 감격에 젖었었다.
마치 암스트롱이 달나라에 첫 발을 들여놓듯이 새로운 세계를 여행하듯 뿌듯하였다.
온라인 공간이 탄생하면서 봉사자들의 활동무대로 사랑방 역할로 발 빠르게 전파되어 봉사신청. 활동사진 봉사소감과 욕구 사항들을 카페에 올리기 시작하여 언제 어디서든지 봉사 소식을 공유하게 되었다.
카페지기인 나는 ‘아름다운 동행’에 올린 글과 사진에 격려와 지지로 공감하면서 짤막하게 댓글을 열심히 올렸다.
자연스럽게 봉사자와 센터는 온라인 상 소통이 되어 자원봉사 업무의 한 분야가 되었다. 그 당시 '아름다운 동행 ' 카페는 파급효과가 빨랐고 봉사자들에게 인기도 많아 내가 퇴직 할 때 회원 수가 3.000명이나 되었다. 전국자원봉사센터에 봉사자 커뮤니티 공간을 처음 설치한 곳이 안양시자원봉사센터였다.
카페지기로 또 운영자로 봉사현장에서 수고하는 마음을 잘 읽어주면서 동기부여가 되는 댓글을 정성껏 올리고 노력한 결과가 짧은 글이라도 쓸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 본다.
퇴직을 한지 8년이란 세월이 화살같이 지나갔다. 그동안 집안에 어려운 일이 있어 나의 반경이 좁아지며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지금은 하루를 내가 하고 싶으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을 만큼 여유가 내게 주어졌다. 주어진 시간을 무엇을 하고 보낼까 고민하다가 자원봉사들과 함께한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르고 소중함으로 밀려왔다.
언제 어디서나 무슨 일이 생기면 어디라도 달려가는 봉사자들의 손길로 세상은 큰 변화를 가져다준다. 더 살기 좋은 세상을 위해 작은 나눔과 배려와 변화를 위해 수많은 봉사자들의 이야기를 묻어 두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언뜻 언뜻 스쳤다.
그 봉사자들의 향기가 소중하고 깊은 여운으로 보석처럼 반짝 반짝 거리며 내 인생의 후반을 행복에 젖게 한다.
봉사자들과의 있었던 짤막한 글을 수필이라는 글에 맞춰 써보고 싶어서 용기를 내 보았다.
나이가 들면 추억을 먹고 산다고 한다. 보물같은 추억을 서랍 속 깊이 간직할 것이 아니라 꺼내어 봉사 현장에서의 에피소드를 수필이라는 형식으로 써 보고 싶어서 도전하게 된 것이다.
나 아직도 꿈을 먹고 사는 여자인가 보다.
2018년 5월 23일 수필 수업에 쓴 원고.............
그런데 계속 수업에 참여하지 못하고 작심삼일이 되고 말았다.
다른 프로그램 교육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중단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