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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돼지만도 못한 놈

자유로운 영혼(이국희) 2019. 11. 25. 13:28




을사조약에 분개하여 쓴 장지연의 논설

시일야 방성대곡(哭)

‘이 날에 목 놓아 통곡하노라’

황성신문 사장 장지연의 그 유명한 논설 ‘보호조약’ 체결 과정에서의 일본의 강압을 자세히 폭로했다. 1905년 황성신문은 보통 3000부를 찍었다.

‘시일야방성대곡’이 실린 11월20일자는 1만부를 찍어 일제 경무청 검열을 거치지 않고 배포했다.

현대문으로 바꾸면 다음과 같다.


“우리 황제 폐하의 강경하신 뜻으로 거절해 마지 않으셨으니 이 조약이 성립 되지 못할 것 이등박문 스스로가 알아 파기 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 저 개돼지만도 못한 소위 우리 정부의 대신이란 자들이 사사로운 영화를 바라 머뭇거리고 으름장에 겁먹어 떨면서 매국의 역적 됨을 달갑게 여겨서 사천년 강토와 오백년 종묘사직을 남의 나라에 바치고 이천만 동포를 몰아 남의 노예로 만드니 저 개돼지만도 못한 외부대신 박제순과 각부 대신은 깊이 문책할 가치도 없거니와 명색이 참정대신이란 자는 정부의 수상으로 단지 否 字로만 책임을 때우고서 명예를 구하는 밑천으로 삼을 계획이었던가.


 김청음처럼 항서를 찢고 통곡하지고 못하고 정동계처럼 칼로 배를 가르지도 못하고서 뻔뻔스럽게 살아남아 세상에 다시 섰으니 무슨 낯으로 강경하실 황상 폐하를 다시 뵈올 것이며 무슨 낯으로 이천만 동포를 다시 대할 것인가. 아 원통하고 분하도다. 남의 노예 된 우리 이천만 동포여.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 단군 기자 이래 사천년을 이어온 국민정신이 하루밤 사이에 갑자기 멸망하고 말 것인가 원통하고 원통하도다. 동포여 동포여~

장지연이 홧김에 술을 마시고 미처 이 원고를 다 완성하지 못하자 유근이 후반부를 썼다고 한다.


이후 최악의 욕으로 개돼지만도 못한 놈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게 되었다.

거의 집집마다 보관하고 외웠다.

나도 이글을 읽고 또 읽으며 외우고 싶고 보관하고 싶어서 올렸다.


총.칼보다 강한 펜의힘이었다.

장지연사장는 사장직 퇴임. 투옥 되었고. 황성신문은 1906년2월 문닫았다.


110년이 지났어도 역사의 굴레는 반복하고 있다는 현실이 안타깝다.

개돼지 못한 놈에 대한 유래에 이렇게 깊은 역사가   담겨있을 줄이야


한국 근대사 산책을 읽으며  또 다른 슬픔을 발견했다.

항일 언론인  장지연의 친일논쟁이었다. 


항일 언론의 상징이 된 장지연이 말년에 매일신보에 글을 쓴 것이다.

글과 인물을 평가할 때에는 시대상황을 먼저 고려해야한다.

나라의 운명 다 했던 100 년전에 살았던 얼론인의 행적을 오늘의 상황에 끌어다 놓고 작은 흠집을

찾아내어 그 보다 훨씬 큰 업적을 덮어버리면서 더 치열하고 완벽한 삶을 살지 않았다고  매도 한다.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인신보에 실었던 기고를 두고 부분적으로 친일행적을 논란을 제기 한다


이 글을 읽으면서

어떤 환경과 이유에 의해 매일신보에 글을 썼는지 모르나

시일야방성대곡이 그 당시 온 백성들에게 통곡의 한을 전한 의미는 영원히 존중해주고 싶다.

이것이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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