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봉사 이야기

자식사랑은

자유로운 영혼(이국희) 2019. 12. 4. 12:04

2005년 5월 10일에 ‘아름다운 동행’ 카페에 올린 글


어느 중소기업회장은 자원봉사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사회공헌을 실천하신다. 다양한 사회공헌 중에 독거노인들의 삶에 유난히 애정을 가지셨다.

독거노인들의 일상에 도움을 주며 방문하는 봉사단체에게 유익하게 사용하라고 후원금을 매년 지원해주셨다. 가끔 봉사단체 임원들을 회사로 초대 하여 구내식당에서 특별 메뉴로 점심을 봉사자와 함께 하신다. 점심 식사 후 회장실에서 커피 한 잔을 하며 봉사자의 애로점은 무엇이냐 묻기도 하시고 어려운 일을 하는 천사라는 이름을 불러주며 격려 해 주시기도 한다.

이 날은 커피를 마시며 자연스럽게 자식교육에 대한 이야기 중 가슴에 와 닿아 공유하고 싶은 말씀이 있기에 몇 자 적어본다,


그 회장님은 자손이 귀한집안으로 자식을 1남 3녀를 두었는데 그 중 장손인 외아들은 집안에서 손끝 하나 다칠라 금지옥엽으로 할머니의 각별한 사랑을 받고 자랐다. 그렇게 자라다 보니 할머니의 비호아래 버릇이 없고 고집과 왕자처럼 군림하며 점점 자기 밖에 모르는 아이가 되는 것을 발견하였다. 

 부부가 아이문제로 고민 끝에 어머님의 완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안양 읍으로 유학을 보내기로 결심하였다.

  그 당시 회장님 댁은 광명 소하리에 있었고 단독주택에 기름보일러를 사용하는 정원이 있는 저택이었다.


안양에 살고 있는 아주 가까운 지인의 집으로 유학 아닌 유학을 보냈다

그 귀한 아들이 초등학교 저학년 때    지인의 집으로 하숙 생활을 하게 것이다.

그 집은 연탄보일러인 조그만 단독 주택이었으며 아들만 셋 이었다.

생활환경이 변하였고 모두 형인 그 집에서 형들과 한 방에서 자고 일어나고

학교같이 다니고 같은 밥상에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고 집에서와는 달리 물을 데워서 세수하고

 추워도 참아야했고 더욱 청소도 형들과 함께하고 쓰레기도 함께 버리는 일까지 다른 세상에서의 일상이었다.


그 귀한 아들을 지인의 집에서 생활하도록 할 때 마음은 아팠지만 생활환경이 바뀌다 보니 현실에 잘 적응 하고 있었다.

아들은 위로 세 형들이 심부름 시키는 것을 다하고 못하면 형들에게 혼나기도 하고 그 형들과 함께 어울려 놀면서 사회성을 배우는 것이 느껴졌다. 기름보일러인 그 집과 달리 잠자다가도 형들과 연탄불을 갈아야하고  나중에는 혼자서도 연탄불을 잘 갈았다. 외아들로 응석만 부리다가 형들 틈에서 내가 할 일을 터득하고 함께 일을 해나가는 생존의 체험을 자연스럽게 익히며 성격도 원만해지고 오히려 집에서 있을 때 보다 건강하고 밝은 성격을 발견하였다.

3년을 그렇게 안양유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키운 아들이 착실하게 성장하며 독일 유학을 다녀 온 후 현재 회사의 중역을 맡으면서 후계자의 길을 걷고 있다고 하였다. 


 귀한 자식일수록 고생을 시켜 키우라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생각난다.

그러나 실천은 쉽지 않는 일인데 역시 사회공헌을 하는 기업인의 생각과 실천을 다른 면이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자식사랑과 교육은 바로 이것이다.

  공감이 가고 귀감이 될 만한 사례라서 함께 공유하고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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