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역사 쓰기

아침은 밥 저녁은 죽

자유로운 영혼(이국희) 2011. 12. 20. 14:22

 

아침은 밥 저녁은 죽

 

며칠째 감기로 입맛이 없다.

재채기로 시작한 감기는 목이 따갑고 가래를 뱉어내며 기운이 빠진다.

마음먹고 감기약을 시간 맞춰 쌍화탕과 함께 먹었지만 좀처럼 낫지 않았다.

딸이 병원에 가서 주사 맞으라고 성화지만 이까짓 감기로 병원에 가기 싫었다.

나이란 많을수록 마음을 약하게 만드나보다. 어쩔 수 없이 나도 조심하며 방구석에서 뒹굴다가 합병증이 생기면 어쩌나 덜컥 겁도 났다.

 

 

삼일 째 약을 먹으니 조금 괜찮을 것 같은데 입맛이 없다.

갑자기 무 죽이 먹고 싶었다. 무를 어슷하게 썰어서 식용유로 달달 볶다가 물을 붓고

끓을 때 쌀을 넣고 푹 끓이면 무의 다이제스트 성분이어서 그런지 단맛으로 입 안에 살살 녹는 그 무 죽 맛을 난 잊을 수가 없었다.

 

무로 끓인 죽은 아련한 추억으로 떠오른다. 갑자기 집안 살림이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중학교 다닐 적 이었다. 아마 1963~4년쯤으로 기억한다. 아버지의 직업은 장날 마다 외지로 다니면서 농산물을 사서 화물차로 운반하여 청주시장에 파는 중간 상인 이었다. 때로는 가게가 없는 장사꾼으로 서울, 또는 제주도, 전국으로 다니시며 그 지방 특산물을 사서 서울 도매상에 넘기기도 하셨다.

 

 

언젠가 아버지는 서울서 물건을 넘기고 받은 돈을 기차 안에서 쓰리를 맞았다고 하였다.

기차 안에서 잠든 사이 쓰리꾼이 전대를 칼로 찢고 돈을 훔쳐갔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항상 전대라는 헝겊으로 만든 돈주머니를 배에 차고 다니셨다.

그 전대 속에 있는 돈은 우리 집 재산 전부였는데 그것을 잃은 것이었다.

 

 

그 충격의 여파는 오랫동안 우리 집 살림을 힘들게 하였다. 어느 날부터 아침에는 밥을 먹고 저녁에는 죽을 먹게 되었다. 아욱죽, 무죽, 콩나물죽을 멀겋게 한 사발씩 거뜬히 먹었다. 또 좁쌀죽은 노랗고 구수하기 까지 하였다. 쌀 1되로 죽을 쑤면 몇 끼니를 해결할 수있기 때문이다. 한참 자랄 나이의 자식들에게 저녁마다 죽으로 한 끼를 채우려는 아버지나 엄마의 심정이 얼마나 아팠을까. 나는 일찍 어려운 살림을 눈치 채고 있었고 엄마가 이웃집으로 돈을 빌리러 가는 모습을 남모르게 지켜보면서 창피도 했고 아득한 절망감과 정신적 성숙으로 사춘기를 보냈다. 동생들은 투정하지 않고 잘 먹었다. 가끔 막내둥이가 옆집의 밥상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을 등을 툭 치며 손을 이끌고 집으로 데려왔던 일도 있었다.

 

 

한동안 그렇게 죽을 먹었던 것 같았다. 지금은 환자나 건강식으로 죽을 먹는다. 그것도 영양죽이나 보양죽으로 전복죽. 잣죽. 검은깨 죽. 단호박죽 팥 죽 등 그 시대에는 상상도 못하는 영양식단으로 찾아다니며 먹는다. 끼니로 죽을 먹어야 했던 그 시절이 감기로 입맛을 잃은 내가 갑자기 무죽이 입안에 감도는 것은 내 성장기에 죽은 화석처럼 박혀있었나 보다. 먹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많이 먹었기 때문일까. 가족의 아픔이었기 때문일까. 엄마와 아버지가 그리워서 일까. 무죽을 먹고 싶다는 나에게 딸은 무로도 죽을 쒀요. 반문한다. 그래 엄마가 한창 클 나이에 죽을 많이 먹었단다.

 

오늘은 그 시절로 돌아가 우리 가족이 한 상에 둘러 앉아 한 끼를 죽으로 때우던 저녁이고 싶어진다. 감기 기운을 박차고 무를 썰어 죽을 끓이고 있다. 추억을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