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11. 4. 13
유적지 답사 : 석장리박물관 - 무령왕릉- 공산성- 갑사
석장리 박물관 - 반만년의 유구함을 넘어서서 수십만년 전 여우언의 세계로 이어지는 선사문화 박물관
무령왕릉 - 백제 제 25대 무려오아으이 무덤(22년간)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옛 이름은 송산리)에 위히
1971년 송산리 5호분.6호분의 배수구를 마련하는 작업중에 우연히 발견되었다
공산성 - 공주시 산성동에 있는 백제시대의 산성
갑사 -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계롱산 연천봉 아래에 있는 절
문화 유적지 답사라는 명분으로는 처음으로 참여를 하였다.
이제 퇴직도 하였으니 그동안 생각만 간절했던 문화 유적답사를 다니려고 안양문화원에 회원가입을 하였다,
공주 그러니까 백제의 수도 웅진을 답사였다.
역사속의 백제는 수도를 웅진에서 사비성으로 옮겼고 계백장군의 충성과 삼천궁녀 그리고 낙화암 주변에
불타버렸던 재를 발견하였다는 등 이것이 나의 역서속에 백제였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유석기를 발견한 석장리 박물관의 선사시대 유물 모형을 견학하고
1971년 외국인 지리학자에 의해 발견한 무령왕의 무덤은 구릉자체가 고분이 특징이며 벽돌무늬의 고분은 최초의 발견이라고 하였다. 벽돌에 박은 무늬 또한 예술적 조형 무덤으로 숨이 멎도록 찬란하였다.
더욱 발견당시 무덤에 대한 지석이 나왔으며 그시대의 보물이 그대로 있었다고 하였다.
보통 왕릉이 도굴이 많이 되었는데 무령왕능은 원형이 보존되어 있었다고 하였다.
고분을 발견할 당시 왕이나 왕비의 무덤에 기록이 있는 지석이 발견하면 능이라 하고
무덤에 대한 기록이 없는 왕릉은 총이라 한다고 천마총. 등
백제의 웅진은 중국 일본. 인도까지 무역을 하였으며 일본이 백제문화제를 가장 많이 소유하게 된 이유가
활발한 무역이었다고 하였다.
일본이 지금까지 국보로 아끼는 의 구다라관음상(백제유물)이 백제의 유물이라고 하니
그 시대의 백제를 찬란한 문화를 엿 볼수 있었다.
백제의 모습을 볼수 있는 공산성을 올라가보니 사방으로 둘러싸인 천헤의 요새였다고 한다.
천혜의 요새를 지키지 못하고 백제는 멸망하였으니
역사는 이렇게 만들어 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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